기후위기 시대, 생태계는 해법이 될 수 있을까?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붕괴가 동시에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 시점에서, 기술 중심의 대응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떠오르는 것이 바로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s, 이하 NbS)입니다. NbS란 생태계를 복원하고 자연의 기능을 회복함으로써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 재난 위험 경감, 생물다양성 보전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입니다. 단순히 나무를 심는 것을 넘어서 숲과 습지, 해안과 갯벌 등 다양한 자연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NbS는 기후위기 대응뿐 아니라 인간의 삶의 질 향상까지 포괄하는 지속가능한 미래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NbS의 주요 유형 – 생태계 복원부터 도시 재생까지
자연기반해법(NbS)의 가장 큰 강점은 다양한 공간과 환경에서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NbS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자연 생태계의 보전이며, 두 번째는 훼손된 생태계의 복원, 세 번째는 도시나 농촌 등의 인간 거주지에 자연 원리를 통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산림 파괴가 심각한 지역에서는 기존 생태계의 복원을 통해 토양 침식을 방지하고 탄소흡수를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갯벌이나 해안 습지 복원은 해수면 상승과 태풍 피해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며, 해양 생물의 서식지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도시 지역에서도 NbS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도시열섬 현상과 미세먼지, 폭우로 인한 침수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되는 녹색 인프라(Green Infrastructure)는 NbS의 대표 사례입니다. 대표적으로 도시 내 빗물 정원, 옥상 정원, 도로변 생태 회랑, 침투형 포장재 등이 있으며, 이는 단지 경관을 아름답게 꾸미는 수준을 넘어 기후 적응과 생물다양성 보전, 시민 건강 증진까지 포괄합니다. 또한 농촌 지역에서는 생태적 관개 시스템, 친환경 농업기법, 지역 생물종 기반의 토양 회복 방안 등도 NbS의 일환으로 간주됩니다. 이러한 적용 사례는 단일 목표를 위한 기술적 수단이 아니라 복합적인 사회적·생태적 효과를 창출하는 다기능 해법이라는 NbS의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한국에서의 NbS 적용 – 지역 맞춤형 전략의 가능성
한국에서도 자연기반해법은 점차 주목받고 있으며, 특히 지역 맞춤형 기후·환경 전략으로서 그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환경부, 산림청 등은 NbS의 핵심 개념을 도시재생 사업, 국토계획, 수자원 관리 정책 등에 반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물순환 회복 도시' 정책은 도심 빗물 정원, 투수성 포장재, 옥상 녹화 등을 통해 도시의 강우 처리 능력을 높이면서도 생태계를 회복하는 대표적 NbS 사례입니다. 인천 송도 지역에서는 조성된 습지공원이 홍수 완충기능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시민 휴식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도 NbS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라남도의 갯벌 복원 사업, 경기도의 도시 생태축 연결 프로젝트, 부산의 기후적응형 해안 방재 인프라 개발 등은 각 지역 특성에 맞춘 NbS의 좋은 사례입니다. 특히 기후위기와 도시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한국 사회에서, NbS는 비용 효율성과 다중효과라는 측면에서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환경을 개선하는 차원을 넘어서,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 공동체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형 NbS는 중앙정부의 정책적 뒷받침과 함께 지역 실정에 맞는 창의적인 적용 전략이 필수적입니다.
국제사회의 변화 – NbS는 선택이 아닌 필수
국제사회는 NbS를 단순한 환경 정책의 보완재가 아닌 글로벌 기후·환경 전략의 중심축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IPCC는 2022년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기후변화를 효과적으로 완화하고 적응하려면, 자연기반해법의 대규모 확대가 필요하다"고 명확히 언급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특히 NbS가 에너지와 농업 등 온실가스 배출 주요 부문을 직접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2023년 개최된 제28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COP28)에서는 NbS가 단일 세션이 아닌 주요 플레너리 회의 주제로 포함되었으며, ‘기후와 자연의 통합적 접근’이 공식 아젠다로 채택되기도 했습니다.
유럽연합(EU)은 NbS를 정책 전반에 통합하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입니다. EU는 2030 생물다양성 전략과 유럽 그린딜을 통해 NbS를 법제화하고 있으며, 도시개발, 농업, 에너지, 교육 등 다양한 부문에 이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도시녹색계획(Nature-based Urban Planning)’ 지침을 통해 도시재생 사업에 NbS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NbS 글로벌 표준’을 제정하여 효과성, 포용성, 지속가능성 등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이는 기업, 정부, NGO가 NbS를 신뢰할 수 있는 체계로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유엔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에서도 NbS는 6번(깨끗한 물과 위생), 13번(기후변화 대응), 14번(해양생태계 보전), 15번(육상 생태계 보호) 등 여러 목표 달성의 핵심 수단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NbS는 단순히 자연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경제, 사회, 건강, 문화 등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통합적 솔루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자연기반해법의 한계와 미래 과제 – 제도화와 정량평가의 중요성
자연기반해법은 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몇 가지 실질적인 한계와 과제 또한 안고 있습니다. 우선 NbS의 효과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하는 체계가 부족하다는 점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예컨대, 특정 도시의 수변 생태 복원이 실제로 탄소 흡수나 미기후 조절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홍수 피해를 얼마나 줄였는지를 입증할 수 있는 과학적 자료가 부족하면 정책 설득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생태계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 측정, 기후 완화 기여도 계산, 생물다양성 변화의 수치화 등이 필수적으로 병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NbS의 제도화 수준은 국가마다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일부 국가는 NbS를 도시계획법이나 환경영향평가 제도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한국을 비롯한 다수 국가에서는 아직까지 별도의 법제나 강제력이 부족합니다. 이로 인해 민간 개발사업에서는 NbS가 단순히 '선택 사항'으로 치부되기 쉽고, 일관된 적용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더불어 민간기업과 시민사회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유인책 마련도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세제 혜택, 인증제도,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정책 도구가 활용될 수 있습니다.
향후 NbS가 단순한 친환경 아이디어가 아니라 과학적 근거와 제도적 기반 위에 실현 가능한 전략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학계, 정부, 산업계가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NbS가 기술적 해법과 어떻게 통합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도 본격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NbS는 '자연에 의존하는 마지막 대안'이 아니라, 인류 생존을 위한 핵심 전략 중 하나로서 위상을 확고히 해야 할 시점입니다.
자연기반해법은 단지 환경을 지키기 위한 대안이 아니라, 기후위기 속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구현하기 위한 핵심 전략입니다. 자연의 복원과 활용을 통해 사회적·경제적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NbS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자연은 해답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야 할 우리와 미래를 위한 파트너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후위기와 생태계 붕괴는 우리의 일상을 압박하고 있지만, 답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바로 자연 그 자체가 그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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