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환경이야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이란 무엇인가

by 꼬마보리 2025. 5. 6.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탄생 배경과 제도의 핵심 내용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즉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유럽연합(EU)이 2023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 중인 기후 정책 중 하나입니다. 이 제도의 핵심 목적은 ‘탄소 누출(carbon leakage)’을 방지하는 데 있습니다. EU는 역내 산업에 강력한 탄소배출 감축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탄소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기업이 생산기지를 이전하면 지구 전체의 온실가스 감축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용절감 차원에서 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기업이 이전하면, 오염은 외부화되고 EU 내 산업은 경쟁력을 잃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EU는 수입 제품에 대해 자국 생산 기준과 같은 수준의 탄소비용을 부과하겠다는 것이 바로 CBAM의 골자입니다. 초기 도입 대상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기, 수소 등 6개 품목이며, 2026년부터는 본격적인 탄소세 납부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한국 수출산업에 미치는 영향 – 제조업 중심 국가의 시험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 시행되면, 한국의 수출산업 전반은 새로운 무역 장벽과 직면하게 됩니다. 특히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화학제품처럼 에너지 집약적이면서도 탄소 배출량이 높은 산업은 가장 큰 영향을 받습니다. 예컨대, 한국은 2023년 기준 EU에 철강 수출 규모가 전체 철강 수출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CBAM 대상 품목 중 단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러한 산업들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공정 개선이 시급한데, 기존에는 비용 부담을 이유로 투자가 미뤄졌던 측면이 있습니다. CBAM 도입은 이러한 개선을 더는 미룰 수 없게 만들며, 기업들에게 구조적인 체질 개선을 요구합니다.

문제는 단순한 기술 전환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출 제품의 탄소배출량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이에 대한 검증 데이터를 EU 기준에 맞춰 보고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투명한 배출정보 관리 시스템’이 미비한 기업은 '기본값(Default Value)'이라는 불리한 기준을 적용받게 됩니다. EU는 기본값을 “가장 탄소집약적인 방식으로 생산된 것”을 기준으로 책정하므로, 실측값보다 높게 평가되어 과도한 탄소비용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CBAM은 단순히 EU 시장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글로벌 공급망 상에서 ‘탄소 배출이 적은 제품’이라는 인증은 곧 브랜드 신뢰도와 ESG 경쟁력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고객사나 투자자로부터 외면받고, 궁극적으로는 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기업 차원에서의 전환뿐 아니라, 정부 차원의 지원 체계와 산업 전반의 공동 대응이 병행되어야 할 시점입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이란 무엇인가

 

정부의 대응 전략과 법제도 정비 현황

한국 정부는 CBAM이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탄소 회계 인프라 구축과 제도적 대응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우선 환경부는 2024년부터 ‘제품 탄소발자국 인증제도’를 CBAM 대상 품목 중심으로 시범 운영 중입니다. 이 인증제도는 제품 단위의 탄소배출량을 국제기준에 맞춰 계산하고, 이를 EU의 CBAM 보고서에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여기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수출형 저탄소 산업 육성 전략’을 수립해, 주요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수소환원제철, 전기로 전환,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기술 상용화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또한, 기업이 CBAM 보고 의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탄소배출정보 보고 통합 플랫폼’을 2025년까지 구축할 계획입니다. 이 플랫폼은 제품별 탄소배출 데이터의 표준화를 돕고, 기업 간의 정보 공유와 기술 협력을 지원하는 중추 역할을 맡게 될 것입니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을 위해 ‘CBAM 대응 바우처’ 및 ‘탄소회계 컨설팅 비용’도 지원하고 있으며, 산업별 협회와 연계해 실무 교육과 가이던스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한 목소리로 “정부 지원이 초기적이고 단편적”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기업이 EU CBAM과 같은 국제규제에 대응하려면 단순한 일회성 지원이 아닌,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로드맵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국내 제품별 탄소기준의 법제화, 국제 인증기관과의 연계, 그리고 외교적 협상을 통한 제도 완화 협의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다차원적 접근 없이는 한국 산업의 장기 생존전략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글로벌 확산과 무역질서 재편

CBAM은 단순히 EU 차원의 규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제도는 ‘탄소를 둘러싼 새로운 무역질서의 전환’이라는 더 큰 흐름 속에서 등장했습니다. 미국도 2024년 ‘청정 경쟁법(Clean Competition Act)’을 통해 탄소 기준에 기반한 수입규제를 준비 중이며, 캐나다와 일본 또한 유사한 제도 검토를 진행 중입니다. 즉, 탄소규제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구조 속에서 CBAM은 시발점에 불과합니다. 결과적으로 국제 무역에서 탄소배출량이 하나의 가격 변수이자, 품질 기준으로 작동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은 특히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에 강한 파급력을 가집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고탄소 공정에 의존해온 국가들은 수출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고, 한국 역시 이러한 중간 위치에 놓여 있는 상황입니다. 기술력과 자본은 선진국 수준이나, 제조 공정의 탄소 효율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이로 인해 CBAM 대응 전략을 늦춘다면, ‘탄소 역차별’을 겪을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또한 CBAM은 국제무역기구(WTO) 체계와 충돌 가능성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은 이를 ‘탄소 보호무역주의’로 간주하고 있으며, WTO 차원에서의 법적 대응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탄소가격이 없는 국가가 오히려 불공정 경쟁을 유도한다”며 오히려 CBAM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CBAM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국제 기준 수립에 적극 참여하고, 자국 산업에 적합한 대응 모델을 제시하는 전략적 외교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대응을 기회로: 산업 구조 전환의 계기 만들기

CBAM을 위기라고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를 산업구조 혁신과 저탄소 기술 선도국으로 전환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실제로 일부 선도 기업들은 이미 CBAM 대응을 넘어 ‘탄소 감축형 수출 제품’을 경쟁력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예컨대,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활용해 ‘그린 스틸’을 개발 중이며, 이를 통해 향후 EU는 물론 북미, 일본 등 탄소 기준이 강화되는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 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소기업 역시 개별 대응보다는 공급망 단위의 협력을 통해 탄소정보를 통합 관리하고, 공동 인증 체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저탄소 벨류체인’ 구축은 ESG 금융 지원을 연계하여 실현 가능성을 높이고 있으며, 이는 곧 새로운 산업 생태계 조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 역시 이러한 민간의 움직임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합니다. 단순한 규제 이행 중심이 아닌, 기업의 혁신 노력을 촉진하는 유연한 제도 설계가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저탄소 기술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 국가 차원의 CBAM 대응 전담 기관 설립, 해외 인증 연계 인프라 구축 등이 있습니다. 한국이 CBAM의 수동적 대응을 넘어, 글로벌 탄소규범 형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면, 이는 단지 위기를 넘는 것을 넘어 미래 세대에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남기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단순한 무역 장벽이 아닌, 글로벌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을 상징합니다.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 중심 국가로서, CBAM에 대한 선제적이고 전략적인 대응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고, 저탄소 기술과 정책의 선도 국가로 자리매김한다면, CBAM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이끄는 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