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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야기

기후변화와 해양산성화 – 보이지 않는 바다의 위기

by 꼬마보리 2025. 5. 25.

지구의 기후변화가 육지에서만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절반의 진실입니다. 지구 생명체의 70% 이상을 품고 있는 해양은 지구 온난화의 충격을 가장 먼저, 가장 깊게 받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해양산성화(Ocean Acidification)라는 조용하지만 치명적인 변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해양산성화는 단지 pH 수치의 변화 그 이상이며, 바다 생태계 전체를 흔드는 기후변화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대기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 바다로 흡수되면서, 바닷물의 화학 조성을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기후변화가 해양산성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짚고, 그것이 해양 생물, 어업,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해양산성화란 무엇인가 – 이산화탄소가 바다를 어떻게 바꾸는가

해양산성화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CO₂)가 바닷물에 녹으면서 해수의 pH 농도가 낮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원래 바닷물은 약알칼리성(pH 약 8.2)이지만, 산업혁명 이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증하면서 해수에 녹아드는 CO₂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탄산(H₂CO₃)이 생성되고, 이는 다시 수소이온(H⁺)을 방출하면서 바닷물의 산성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는 단순한 화학 반응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해양의 탄산염 평형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킵니다.

20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현재 해수의 평균 pH는 약 8.1로 떨어졌고, 이는 산성도가 약 30% 증가한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더욱 심각한 점은, 해양산성화가 국지적이거나 일시적인 변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양 전체에서 진행되는 이 변화는 해양 생물의 생리적 균형과 생태계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습니다.

 

해양 생물의 위기 – 산성화가 초래하는 생태계 붕괴

해양산성화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강하게 타격을 주는 대상은 탄산칼슘으로 껍데기나 골격을 형성하는 생물들입니다. 조개류, 성게, 산호, 갑각류, 플랑크톤 등은 바닷물에서 탄산칼슘을 추출해 몸을 구성하는데, 산성도가 높아지면 탄산칼슘이 물에 더 잘 녹아 껍데기가 약해지고 성장 속도가 느려집니다. 특히 미세한 석회성 플랑크톤은 해양 먹이사슬의 최하위층을 이루고 있어, 이들의 감소는 상위 포식자까지 연쇄적인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산호초 또한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온난화로 인한 백화 현상과 더불어, 해양산성화는 산호가 탄산칼슘 골격을 재생하는 능력을 떨어뜨리며, 회복 가능성을 점점 더 낮추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열대 지역의 해양 생물 다양성이 크게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곧 어업 자원의 고갈과 지역 사회의 생계 위협으로 직결됩니다.

또한 최근 연구에서는 산성화가 물고기의 후각 및 방향 감각에도 영향을 준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는 어류의 이동 경로를 변화시키고, 생존율을 낮출 뿐 아니라 기존 어업 시스템 전체에 예기치 못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 먹거리와 생계의 위기

해양산성화는 생태계 차원을 넘어서 직접적인 인간의 생계와 식량안보에도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세계 인구의 약 30억 명은 단백질 섭취의 중요한 원천으로 해양 생물을 의존하고 있으며, 특히 연안 국가나 섬나라, 개발도상국은 해양자원이 식량과 소득의 핵심 기반입니다.

산성화로 인해 조개류 양식업, 어패류 채집업, 산호 관광 산업 등 해양에 기반한 경제 활동은 수익성 저하와 구조적 위축을 피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미국 워싱턴주의 굴 양식업은 산성화로 치패(새끼 굴)의 생존률이 급감하면서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겪었고, 이후 수산업 보호를 위한 모니터링 및 중화 기술이 도입되기도 했습니다.

이와 함께 해양산성화는 기후불평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자본과 기술력이 풍부한 선진국은 해양 자원의 변화에 일정 수준 대응이 가능하지만, 자원이 부족한 저개발 국가나 소규모 어민 공동체는 변화에 매우 취약합니다. 이로 인해 해양 자원의 접근성과 소유권, 국제 수산자원의 분배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얽히는 ‘해양 정의(blue justice)’ 논의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해양산성화 – 보이지 않는 바다의 위기

 

대응 방안과 과제 – 해양을 지키는 다층적 접근

해양산성화는 기후변화의 한 갈래이자, 그 자체로도 고유한 위기입니다. 따라서 이산화탄소 감축이 가장 핵심적인 해결책이지만, 동시에 해양 자체에 대한 모니터링과 보호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현재 미국 NOAA, 유럽의 ICOS(Integrated Carbon Observation System) 등은 해양산성화 모니터링 네트워크를 통해 각 해역의 pH, 온도, 탄산염 농도 등을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데이터는 해양 기후 모델 개선과 정책 설계에 필수적입니다.

또한 국가별 해양보호구역 확대, 해양 탄소흡수원(블루카본) 복원, 산성화 저감용 해양 중화 기술 등의 실험적 대응도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는 양식업 중심 지역에서 바닷물의 화학 조성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알칼리 투입 기술을 시범 도입하고 있으며, 어업 종사자 대상의 교육 및 적응 프로그램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 차원에서는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중 목표 14번 ‘해양생태계 보전’ 달성을 위해 해양산성화 대응을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있으며, 향후 더 많은 국가적·지방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합니다.

 

 

해양산성화는 바다라는 거대한 생명의 터전이 조용히 붕괴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우리는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해양의 산성화라는 ‘보이지 않는 위기’에는 아직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파장은 해양 생태계를 넘어서 우리의 식탁과 생계, 국가의 경제 전략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기후위기를 논할 때, 바다를 중심에 놓고 생각할 때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히 바다가 아니라, 그 안에 숨 쉬는 모든 생명과 연결된 우리의 미래입니다.